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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기행/대한민국

코로나 시대 주말 산책 오산 독산성(독성산성) 세마대지 산책

by 기서무나구물 2020. 8. 9.

포스팅 목차

    코로나 시대 주말 산책 오산 독산성(독성산성) 세마대지 산책



    비가 올 듯하여 드라이브 할 요량으로 출발하였는데, 기상청 예보가 어김없이 예측이 어긋나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산성 산책. 산성 인근까지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어서 아이들과 산책.

    오산,수원,화성(동탄)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략적 요충지임을 누구나 쉽게 납득이 갈 수밖에 없는 풍광을 품고 있는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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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140호. 독성산성(禿城山城)이라고도 불린다.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3.6㎞인데, 현재 약 400m 정도의 성벽과 성문 4곳이 남아 있다. 쌓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였으므로, 한강 하류에 도성을 두었던 백제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산성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곧 1593년(선조 26)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權慄)이 근왕병 2만 명을 모아 북상하다가 이곳에 진을 치고서 왜적을 물리쳤고, 이듬해 9월 11일~14일에는 백성들이 힘을 모아 불과 4일 만에 고쳐 쌓았다. 이러한 과정은 주변에 알려져 금지산성(衿之山城)에서도 군량을 모으고 병사를 훈련시켰으며, 월계산성(月溪山城)과 파사산성(婆娑山城)까지 영향을 미쳤다. 1595년에는 포루(砲樓) 시설을 갖추었고, 1597년 2월에는 왜병이 쏜 조총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성벽 안쪽에 평평한 집을 지었으며, 석차(石車)와 함께 투석용으로 쓰던 포차(抛車)를 배치하면서 성 밖에 목책을 세우려고 계획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략적 위상이 계속 중시되어, 1602년(선조 35)에 변응성(邊應星)이 수리하여 쌓았다. 1796년(정조 20)에 수원성 축조와 함께 고쳐 쌓아 오늘에 이르는데, 당시 성의 둘레는 1,800보이고 성문 4곳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많은 군사들이 주둔하기에는 물이 부족한 편이다. 이것은 세마대(洗馬臺)을 낳았다. 곧 1593년에 권율이 이곳에 주둔하였을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이 와서 산에 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보내며 조롱하였다. 권율은 물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백마를 산 위로 끌어 올리고서 목욕시키는 것처럼 흰 쌀을 끼얹었다. 이를 본 왜군은 말을 씻길 만큼 산 꼭대기에 물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고는 물러났다고 한다. 세마대는 1957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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