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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품에 안기다 - 뉴질랜드 남섬(South Island, New Zealand)
- 방송일: 2011년 1월 15일 (토) 오전 10:10 KBS 1TV
- 촬영·연출·글 : 노윤구 PD
- 뉴질랜드 한자표기 : 新西蘭(신서란)、新西蘭土(신서란토)
도시의 위치를 대강 파악했다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가 영국적인 도시임을 자랑하는 해글리 공원(Hagley Park).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왔다는 것이 공원의 첫인상으로 다가온다. 곳곳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맑은 느낌을 준다. “조심하세요! 안 그러면 다 젖을 거예요.” “좀 있으면 뭐라고 할 겁니다.” “아빠!” “물이 잘 안 나오니까요. 재미있었어? 한국 사람들에게 인사해봐.” “무서운 눈을 해 보일거야.” “무서운 눈 말고 인사를 해봐.” “안녕하세요? 한국인 여러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인사드려요.” 공원에 어울리는 부자의 모습이다. 행복해 보인다. 해글리 공원 안에는 골프장과 식물원이 있다. 식물원 투어열차를 타면 꽃과 나무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정원의 도시답다. “여기 보이는 뒷부분이 하얀 잎은 '랑기오라'라고 하는 건데, 이곳 사람들은 '부시맨 화장지'라고 부릅니다. 잎이 질겨서 1920-30년대에는 이 잎을 우편엽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식물원은 크라이스트처치의 역사를 대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곳에서 관광객들에게 도시의 역사를 잘 이해시키려 하고 있죠. 그리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식물들을 가져다 이곳에 심었는데, 철따라 그 식물들이 꽃을 피우기 때문에 이 공원 한 곳에서 갖가지 꽃 색깔이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약간 피라미드처럼 보이는 저 '누트카'는 알래스카 삼나무인데 이 부근에서 아이를 찾는 분들이 있으면, 저 나무 밑으로 가보라고 합니다.“ 과연 아이들이 매달려 놀고 싶게 생겼다. 나무 하나가 온전히 놀이터 한 공간이다. 이런 자연 속에서라면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듯하다.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 근교에 자리한 뉴브라이튼 도서관. 왜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꼭 가보라 했으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터. 아름다운 건물로 상 받은 것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조용한 도서관이지만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시민들을 위해 도서는 물론 음반, 영상 등 모든 자료를 제공한다. 그러고 보니 노인 분들이 많이 눈에 띤다. “첫인상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구조도 좋고 위층도 멋있고 아이들도 예뻐요. 이렇게 앉아서 쉴 수 있는 편안한 자리도 있고요 그리고 저쪽은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기도 합니다. 좀 전에 복도를 지나왔는데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정말 아름다워요.“ 이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이 바다란 말인가? 멋지다! 바다라도 정말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구나. 눈앞의 바다는 태평양이다. 저 바다를 건너가면 남미 칠레에 닿을 것이다. 여행 중에 도서관을 찾은 건 처음이다. 하지만 이런 곳엔 누구라도 오고 싶을 것ㅇ다. 대양을 품은 다리로 나가본다. 태평양 바다를 선물한 이에게 조용히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서. 나는 이런 바다를 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 내가 꿈꾸던 자연이 이런 모습으로 내게 나타나는구나 싶다. 어쩌면 이 해변은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남을 것 같다.
양 울음소리에 길을 멈춘다. 새끼 양 한 마리가 나의 관심을 끈다. 다른 양은 사람을 피해 달아나는 데 열심히 사람을 쫓아다니고 있으니 애완동물용 양인가 보다. 애타게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틀림없지 싶다. 우유를 준비하는 주인도 양과 온도를 맞추는 정성이 여간 아니다. “너무 뜨겁지 않은가?“ “래리 젖 먹자” '래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 양은 지난겨울 어미가 새끼를 낳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인이 직접 하루에 두 번씩 우유를 먹이며 키우고 있다. 젖을 먹이다 보니 래리도 주인을 따르고, 주인도 정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날씨가 좋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종종 생기는데, 지난겨울은 날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새끼를 낳을 즈음에, 매우 추워서 어미를 잃게 되었죠. 만약 어미를 잃으면 어미역할을 할 다른 양을 찾아주던가 아니면 직접 새끼 양에게 젖을 먹여 돌봐야 합니다.“ 래리는 이제 머지않아 젖을 떼야 한다. 주인은 래리가 다른 양들처럼 풀을 먹고, 사람을 멀리하는 본래의 습성을 찾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고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정이 들면 모두 똑같아지는구나 싶다. '래리'가 잘 해나가기를 빈다.
뉴질랜드에는 호수가 많다. 만년설이 녹아내려서 마치 우유를 탄 것 같은 에메랄드빛 색깔도 아름답지만 맑기 또한 그지없다. 그 맑은 물길에 연어 양식장이 있다.이 근처를 지나는 사람은 일부러 이쪽으로 길을 잡아서 연어를 사간다고 한다. 맛 소문이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이분들은 전에 사갔던 포장 박스를 가지고 왔다.“우리는 이곳의 연어를 좋아해요. 왜냐하면 이곳의 운하는 항상 물이 흐르기 때문에 깨끗하거든요. 물이 늘 깨끗하기 때문에, 여길 지날 때면 연어를 사가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이 연어의 맛을 대변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싱싱한 육즙과 쫄깃함.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이제 내게 뉴질랜드의 파란 물빛은 맛있는 연어의 기억이 되어 버렸다.
퀸스타운은 대표적인 리조트 도시이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움을 인정받은 이곳은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사람 대부분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퀸스타운은 높은 곳에서 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주변 산들이 높아서 그럴 장소는 곳곳에 있다.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큰 와카티푸 호수. 면적이 여의도 35배나 된다. 끝 간 데 없는 호수와 산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시원해진다. “20일 동안 휴가를 보내려고 이곳에 왔는데, 아주 행복합니다. 당신이 아주 행복하다고 말할 줄 알았어요.“ 그렇다, 행복은 지금 느껴야 하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행복한가? 자문해 본다. 이곳은 분명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이다.
퀸스타운의 와카티푸 호수 물이 흘러가는 카와라우 강 위에 새 다리가 생기고 전에 있떤 다리에는 세계적인 명물이 생겼따. 새 길이 난 뒤 외진 곳이 되었는데도 오히려 사람을 더 많이 불러 오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번지 점프.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 47m 높은 다리 위에서 물을 향해 뛰어내리는 번지점프를 하며 사람들은 흥분하고, 보는 사람들은 가슴 졸인다. “아이들이 뛸 건가 봐요.” 비명소리는 괜스레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하고, 흥분시킨다. 물속에 제법 깊이 빠졌으니 물을 꽤 먹었을 것 같다. “점프할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얼마나 깊이 들어갈까 생각했어요. 반 밖에 안 들어갔어요. 좋아요.” “물에 들어가기를 원했나요?” “네,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요.” “왜 물에 빠지고 싶었습니까?” “꼭 물에 빠지고 싶었는데, 조금밖에 안 들어가서 다시 뛰었더니 이번엔 제대로 빠졌어요.” “지금 만족스럽습니까?” “기분이 아주 좋아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 번지점프하러 왔거든요.”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당당 할 수 있다. 이번에는 흰 머리 할아버지다. 역시 당당해 보인다. 어쩌면 이분에게 오늘은 젊은 날의 축제가 될 것 같다. 번지가 조금은 멋져 보인다. '평생 남을 기억'이란 말 때문에. “번지점프는 처음인가요?” “네.” “물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시죠?” “원치 않습니다.” “하루에 몇 사람 정도 뛰나요?” “요즘은 한 80명 정도 돼요. 늘 당신이 서른 두 번째입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뛰어내렸나요?” “370번 정도 뛰었습니다.” “아주 전문가군요.” “저는 한 100번 정도 뛰었습니다.” “처음이라고 했죠?” “네, 처음입니다.” 이 순간, 뛰기로 한 결정이 정말로 후회 된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이 축제가 될 수도 있다.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드는 축제! 오늘이 그 날이기를.
뉴질랜드에는 어딜 가나 트레킹 코스가 있고, 안내 표지도 정확하게 잘 되어있다. 지금 가는 곳은 호수가 있는 평지 길이다.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오래된 숲이라는 걸 금방 느낄 수 있다. 이끼가 마치 고급 양탄자 같다. 넓고도 오래된 숲을 나 혼자 향유하는 호사를 누린다. 숲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 좋은 게 있다. 이 숲도 내가 온 것을 반기는듯하여 남모르게 기분이 좋다. 뉴질랜드에서는 혼자 트레킹을 하더라도 길을 잃을까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정확한 각도로 붙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든 화살표지만 따라가면 원하는 곳에 닿을 것이다.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온전히 트레킹만 해도 좋을 듯 싶다.
무엇 때문에 왔든, 언제 오든, 이곳에 온 사람에게 후회는 없을 듯싶다. 이곳에서는 늘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좋은 것을 보면 소유욕이 생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저 중에 하나만이라도 우리나라에 있다면 명승지로 소문이 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이 어디든 지천이고 맑기만 하다. 흐르는 물을 그냥 떠 마시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는가 싶다. 태초에 자연이 이랬구나 싶고, 그것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가 부럽다. 만년설이 폭포로 떨어지는 곳에 갈 수 있어 보인다. 한여름에도 다 녹지 않는 만년설을 내 발로 디뎌보고 싶어 그곳으로 향한다. 발품을 팔아서 보는 광경이라 그런지 더 멋있다. 이렇게 많은 물이 쉼 없이 흘러내리는데 다 녹아내리지 않고 겨울을 맞이한단 말인가 자연의 광대함에 겸손해질 뿐이지만 호연지기도 함께 느껴진다.
호머 터널은 여행객의 발길을 막는 저 높은 바위산을 뚫어서 만든 터널이다. 이 바위 터널은 수많은 사람이 눈사태와 싸워가며 20여 년 동안 공사를 해`1954년에 개통했다. 터널 안 표면은 지금도 화강암 그대로다. 밀포드사운드를 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싶다. 해발 1000m의 급경사가 협곡의 강렬함을 더한다.
비 온 뒤라 안개에 가려 오늘은 원하던 모습을 보기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처음으로 나를 맞이하는 것은 162m의 보엔 폭포. 그 명칭은 뉴질랜드 총독 부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비 올 때만 생겨나는 다른 폭포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이름을 붙인 듯하다. 빗줄기는 굵어지고, 자그만 폭포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관광객을 위해서인지 비가 오는 데도 바다표범들이 한가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펭귄과 돌고래도 있다는데 오늘은 이들 뿐이다.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보고 갔으면 하는 게 어떤 겁니까?” “저처럼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걸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21년 동안 하루에 3번씩 이곳을 보는데 아직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새롭다는 겁니까?” “그렇죠. 날씨, 기온에 따라 색깔이나 모든 게 매일 매일 바뀝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면 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명승인 스털링 폭포는 유람선이 바로 폭포 아래까지 갈 수 있어 관광객들이 환호하는 곳이다. 150m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을 온몸으로 맞아본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밀포드사운드는 내륙으로 16km나 깊게 들어온 좁은 만인데, 빙하침식으로 이루어져 날카로운 계곡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로 이어진다. 비가 온 탓에 크고 작은 폭포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구름을 뚫고 쏟아지는 물줄기는 하늘에 닿은 듯 환상에 젖게 한다. 맑은 날에 왔다면 이런 경치는 보지 못했을 터. 세상은 늘 그렇게 공평하다. 안개에 가린 경치가 오히려 감칠맛 있고, 변화무쌍하여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는다. 이것이 내가 보고 싶었던 밀포드 사운드의 자연이다.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다.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아마 못 올 것 같습니다. 핀란드에서 왔는데 지구 반대편에 있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눈앞에 펼쳐진 자연 앞에 잠시 멈춰 선다.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아름다운 풍광을 눈으로, 마음으로, 몸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뉴질랜드 유튜브 영상기행 : [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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