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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의 교차로 - 서아프리카 말리(Mali)
- 방송일: 2011년 1월 22일 (토) 오전 10:10 KBS 1TV
- 촬영․글․연출: 김병수 PD
- 말리 한자표기 : 馬里(마리)
니제르 강을 끼고, 분지 한가운데 들어선 말리의 수도 바마코. 중심가로 들어서는 길. 여느 수도와 다름없이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말리를 상징하는 동물. 니제르 강의 하마다. 승객을 가득 태우고 아슬아슬 달리는 도로 위의 초록색 차들이 인상적이다. 바마코의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다. “정원 20명이 차야 떠납니다.” 정원이 찰 때까지 기다리는 게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바마코 거리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시민들의 훌륭한 발이다. 유럽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동차들. 비교적 먼 거리까지 가는 이 버스의 정원은 스물두 명. 버스에 오르면 바마코 시민들을 더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거리를 수놓는 이 버스들은 바마코의 명물. 흔들리는 바깥 풍경을 눈에 담다보면 어느덧 바마코의 시민이 된 듯하다.
이름 그대로 바마코에서 가장 큰 시장, '그랑 마르쉐.' 바마코 시민들이 생필품을 구하는 곳이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것은 무엇입니까?” “원단입니다.” 화려한 원색의 물결. 말리의 색깔이다. “이곳 말리에서 만든 것입니다.” 여기도 중국산이 많아서인지 말리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이곳에는 재봉사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정성스레 수를 놓고 있다. “여자 정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말리는 아프리카 국가 중 순위에 드는 면화 생산지다. 자연스레 의류산업이 발달했다. 우리에게도 낯익은 풍경. 이들은 말리의 자부심을 한 땀 한 땀 수놓고 있다. 시장을 걷다보니 이색적인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동물들의 가죽… 그렇다, 여긴 아프리카다. “이것은 사자이고 이것은 호랑이입니다.” 토속 신앙이 강하게 남아있는 이곳에서 동물들의 가죽은 다양하게 쓰인다. “의식을 위해 마라부(전통무속인)들이 사거나 가방을 만들 때, 혹은 그냥 집안에 걸어두기 위해 사기도 합니다.“ 돌돌 만 뱀 가죽이 눈길을 사로잡는 한 공방. 그랑 마르쉐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띠장에는 이런 공방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얼마동안이나 일했냐구요?” “네.” “50년째입니다.” 그의 짤막한 대답에서 자부심이 느껴진다. 벨트는 뱀 가죽, 가방은 니제르 강에서 나오는 악어가죽이다. 서울 인사동 거리처럼 아르띠장에서는 말리의 전통 예술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중 가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고, 이것은 칼입니다. 칼입니다. 전쟁의 무기죠. 삶(인생)은 전쟁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양보를 해야 합니다. 때로 당신은 허리를 굽혀야 하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쟁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지혜의 마스크입니다.“ 도공 지역에서 나온다는 '양보의 마스크.' 삶이라는 전쟁에서 승리만 할 수는 없는 법. 때론 양보와 화해를 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지혜다.
서아프리카를 관통하는 니제르 강(Niger River). 그 길이만 4,20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수많은 작은 배들이 뭔가를 가득 싣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모래다. 니제르 강의 지류에서 퍼 올려져 이곳 바마코에서 내려진다. 각종 공사 현장에서 사용될 이 모래들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말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모래채취는) 여기서 대략 6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처음 한 사람이 시작을 해서 그것이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죠.“ 일감이 늘어나면서 모두들 자신의 몫을 더한다. 어른 몸무게 두 배는 족히 나갈 듯한 모래를 쉴 새 없이 져 나른다. 오바마 대통령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우리는 변화를 믿습니다.' 미대통령 선거 때 쓰였던 옷들이 원조 물자가 되어 다시 이곳에서 사용된다. 열심히 일하는 오바마 대통령, 아니 오바마 대통령 티셔츠를 입은 사나이 그가 믿고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힘든 노동 뒤에도, 여전히 그 믿음은 유효할까? 더 묻고 싶지만 바쁜 그를 붙잡아 둘 수는 없다. 말리인들은 이 니제르 강에 자신의 꿈을 띄운다. 혹 누군가는 월척을 낚을지도 모르지만, 니제르 강에서 이들은 부지런히 하루의 양식을 구한다.
말리의 한 공원을 찾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귀여운 꼬마까지 정성스레 갖춰 입은 걸 보니 중요한 행사가 있는 모양이다. “네, 전형적인 말리의 옷입니다. 오늘 제 조카의 결혼식입니다. 말리에서는 결혼을 하면 이런 식입니다. 축제죠.” 비교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결혼식이다. 주례사가 끝나고 예물이 건네진다. 우리와 별반 다름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결혼식에 웬 확성기? 교통정리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들은 결혼식 내내 쉴 새 없이 큰소리로 뭔가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오'다. “말을 잘하고 노래를 잘해야 해요. 그러면 (그리오의) 자격이 돼요. 그래서 이런 결혼식이라든지, 세례식이라든지 모든 의식들에 사람들이 (그리오를) 초대 합니다.” 그리오는 구술 전통에 따라 서아프리카 지역에만 있는 독특한 직업인이다. 이들은 사회의 대소사에 관여한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를 읊거나 노래를 불러 판의 흥을 돋운다. “그리오는 나와 나의 가족의 관계를 원활하게 합니다. 그리오의 역할은 사회관계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을 위해 그 역할을 합니다.”이들 그리오가 더 궁금해졌다. 대로변에서 치러지는 또 다른 결혼식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판이 벌어졌다. 비록 악기는 낡았지만 그들의 흥은 그 어느 잔치판 못지않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오가 있다. “음악과 함께 춤을 추는 게 전통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들의 음악은 모두를 하나로 묶는다. 나도 잠시 그들의 흥에 빠져본다.
이곳은 말리의 곡창지대이기도 하다. 시카소의 이른 아침. 바나나가 기름 속에서 노릇하게 익어간다. 역시 생선은 빠지지 않는다. 니제르 강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맛있게 튀겨진다. 여기에 밥 혹은 콩을 곁들이면 말리의 훌륭한 아침 식사가 완성된다. “매일 먹는 음식입니다.” “맛있나요?” “예, 아주 맛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청년들이 뭔가 열심히 준비한다. 숯불을 가져다 그 위에 올려놓는데… 잠시 후 달콤한 향과 함께 보기에도 맛깔스러운 커피가 증류되어 나온다. 훌륭한 에스프레소다. “매일 아침 일하기전에 이렇게 커피나 차를 마십니다.” 숯불로 우려낸 진한 커피가 아프리카의 아침을 깨운다.“
130년 전, 사람의 손으로 직접 쌓아 만든 언덕을 오른다. 아프리카 저항의 역사가 숨겨져 있는 마믈롱이다. “프랑스 군대가 시카소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즉시 이 마믈롱에 올라왔습니다. 이곳이 권력의 원천이고 시카소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으로 올라와 프랑스 국기를 게양했습니다. 프랑스 군대가 이 감시 전망대를 만들었습니다.” 한 세기 전, 이 언덕은 프랑스 군대에 맞선 시카소 전사들이 최후의 기지로 지키던 곳이다. 2층의 나무 발판은 이미 오래전에 훼손됐다.전망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프랑스 점령군의 깃발이 나부꼈을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시카소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 세기 전까지 이곳은 케네두구 제국의 땅이었다.
“케네두구 티에바 트라오레 왕입니다. 이 왕이 케네두구 제국의 수도를 이곳 시카소로 정한 사람입니다.” 다소 초라하게 보존되어 있는 왕릉. 오히려 숙연함을 자아낸다. 시카소의 환영 안내탑에는 두 명의 왕이 소개되어있다. 티에바 왕의 뒤를 이은 바베마 왕. 그의 짧은 즉위기간은 프랑스 군대의 침입과 함께 끝난다. 바베마 왕은 그의 유언에 따라 초라한 왕릉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 “시카소가 적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 날이면, (바베마 왕은) 누군가의 노예로 잡히기 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차라리 노예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카소가 1898년 (프랑스의) 손에 떨어졌을 때 그날 (바베마 왕은) 바로 자살을 했습니다.“ “여기가 포세 꼼뮌 (빈자의 무덤)입니다.” 시카소 외곽을 찾았다. 이곳에는 당시 전투에서 사망한 시카소 전사들과 프랑스 군인들이 함께 묻혀있다. 이름 없이 쓰러져간 이들의 넋을 기리는 곳이다.
티에바 왕이 시카소를 수도로 정하면서 쌓기 시작한 성벽. 시카소 저항의 상징이다. 이방인에게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 시카소의 아이들은 자랑스런 조상들의 이름을 기억할까?
10세기경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춘 젠네. 사하라 사막의 대상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었다. 현재 7개의 종족 3만 3천여 명이 살고 있다. 1,100킬로미터 길이의 바니강은 말리에서 니제르 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젠네는 이 바니강이 휘감고 있는 섬이다. 그래서 이렇게 배를 타고 건너가야만 한다. 니제르강이 모래의 강이라면 바니강은 진흙의 강이다. 젠네는 그래서 진흙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젠네 모스크. 전부 흙으로만 만들어진 사원이다. 13세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75평방미터의 바닥에 천장의 높이가 최고 50미터다. 이 야자나무들은 사원의 지지대 역할을 하며 외벽 보수공사 시에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젠네 모스크는 흙벽돌로 건물을 짓는 아도베 건축양식의 대미로 꼽힌다. 이 양식으로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섬 도시 젠네는 독특한 풍경을 가진다. 좁은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동여맨 누나. 골목을 돌때마다 추억의 얼굴을 만난다. 무너진 집 사이로 흙벽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진흙에 볏짚 따위를 넣고 작렬하는 태양에 구워낸 이 흙벽돌은 장정이 올라가도 부서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오직 흙과 물로만 집을 짓는다. 우기철 피해를 막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수. 배수만 잘되면 수십 년을 끄떡없이 지낼 수 있다. 두꺼운 외벽은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차단해주며 시원한 실내 공간을 만든다. 흙으로 세운 사원, 흙으로 지은 집, 흙으로 빚은 도자기… 흙으로 뭘 한대도 이상할 게 없다. 모든 게 자연스럽다. “여기 마을이 생기고 난 뒤부터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만들어왔습니다.” 일상에서 구할 수 있는 평범한 재료를 이렇게 훌륭하게 사용해왔다. 곡식들을 서늘하게 보관할 수 있는 항아리다. 젠네의 골목길을 따라 잠시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곳의 시각은 아직 우리의 삶에서 예술이 분리되기 전이다. 골목길을 돌면 금방이라도 코흘리개 어릴 적 내 모습을 만날 것 같다.
자급자족하며 사는 사람들. 그들의 삶에는 아직 예술의 자취가 남아있다. 어부인 보조족은 젠네 외에도 또 다른 도시를 만든다. 니제르 강과 바니 강이 만나 '말리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도시가 있다. 말리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몹티는 바마코와 사하라 사막을 잇는 물류의 중심지다. 두 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몹티는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다 보니 이곳만의 명물이 있다. 바로 훈제 생선. 메기, 붕어 등 다양한 민물 생선들뿐 아니라 정어리 등 바다 생선들도 이곳으로 옮겨져 훈제 처리된 뒤 수출된다. 사하라 사막의 팀북투 지역에서 오는 귀한 물건, 바로 '암염'이다. 말 그대로 단단한 바위 소금. 깊은 바다의 맛이 난다. 한때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의 주요 무역품으로 말리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도공은 이번 말리여행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곳이다. 강과 멀어지면서 사막지역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150킬로미터로 쭉 뻗어 있는 사암 절벽은 최고 높이가 500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척박한 땅과 자연환경이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보다 편한 안식처가 됐다. '텔렘'이라고 하는 고대 피그미족들이 다른 종족들의 공격을 피해 살았던 곳이다. 그들은 절벽 한 가운데 동굴을 파고 줄을 타고 오르내리며 살았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이들에게 더할 수 없이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했다. 발아래, 흙 대신 단단한 돌부리가 차이는 이곳은 반디아가라 절벽 바로 밑. 작고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의 '텔렘'들은 14세기까지 이곳에 살았다. 말리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이 날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반디아가라의 절벽은 피그미족들에게 피신처를 제공했듯, 도공 사람들에게도 든든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도공의 마을에서는 애니미즘 신앙을 반영한 다양한 장식물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모든 사물에 생명과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마을 꼭대기의 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토구나(Toguna)라고 하는 교섭의 장소입니다. 마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서 논의를 합니다.” 마을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토구나.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곳이다. 절벽을 뒤로하고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었던 도공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낮은 천장 때문에 토구나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두 허리를 낮춰야한다. 서서 싸움을 하던 두 사람도 이곳에선 일단 앉을 수밖에 없다. 거친 자연환경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야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양보가 필요하고, 화해가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도공 사람들의 삶은 결코 척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말리 유튜브 영상기행 : [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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